<데미안>
지금의 <데미안>을 아름아름 기억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밑줄 그으며 읽었다면, 아님
그때엔 그토록 지나치고 싶던,
그러나 먹먹하게 그리운 청춘의 내가 지금처럼 읽었다면.
그때의 <데미안>도 지금과 같았을까.
고등학교 시절엔 이해 안되는 고전이었다. 대학시절 필수교양과목 독서목록이었던 헤세의 <데미안>은
서른이 넘어가며 그 한 줄 한 줄이 깊은 울림을 준다
제일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난 주저없이 <데미안>을 꼽는다.
이젠 스무 번도 넘게 읽은 책이고, 깊은 새벽의 멜랑콜리아 한 감정에 묻힐 때면 <데미안>을 다시 꺼내곤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번씩 만나는, 아니 내 속에 함께 살고 있는 데미안을
가끔 만나 인사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깐.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헤세의 <데미안>이 오브제로 사용되었다.
요즘시대에 맞게 책표지도 예쁘고, 번역도 참 젊었다.
물론, 드라마 작가의 ‘새는 알을 깨고 날아간다’ 투의 해석도 즐겁게 들었다.
내 경우, 헤세의 <데미안>은 강의에서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며, 내게 가장 중한 책이며, 언제나 읽을 수록 나를 바로 보게 하는 책이기 때문에.
현재 많은 번역과 출판사의 <데미안>이 많이 나와있지만,
내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민음사, 전영애 선생님의 그것.
우리는 성장한다. 그리고 두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헤세의 두 세계는 밝고 따뜻한 세계와 어둡고 두려운 세계이다.
우리도 싱클레어가 있던 어머니의 세계, 따뜻한 세계에서 어느 순간 나오게 된다.
다른 세계에서의 인식체계를 분석할 수는 없을 정도의 미숙함을 가졌지만
우리도 싱클레어처럼 데미안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그 데미안이 가르쳐주는 카인의 이야기처럼, 그런 어둠의 세계는 오로지 두렵고,
무섭고 공포스러움에서 끝나는 세계가 아니다.
헤세는 ‘데미안’이라는 어원에서 혹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피스토리우스 신부와 압락사스 이미지 장치를 해놓았다.
피스토리우스 신부는 그 유명한 구절에 대해 열쇠를 준다. 방황하는 싱클레어에게
누군가 건넨 쪽지(데미안이 준 쪽지-다시 보니 그는 사라졌지만)에 써있어 늘 괴롭히던 말
“새는 알에서 를 자신의 세계를 깰 수 있는 내면의 힘.
그 세계가 처음은 따뜻하든 (싱클레어의 밝은 세계에 해당) 어둡든 간에 스스로 ‘깰 수 있는’ 힘을 가진 새,
그것은 ‘나 자신’ 자아가 된다.
데미안은 늘 깨어있으라 한다.
“데미안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물론, 어떻게 책을 수용하느냐에 따라 해석도 달라지지만 나는 ‘악마’ 데몬에 그 어원을 둔다고 본다.
그리고 그 악은 개인의 한 부분이라는 것,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악 조차 나의 것이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선과 악의 개별적 판단이 개인성을 드러내며 그것의 총체가 ‘나’라는 것.
그래서 그 착하디 착한 싱클레어 근원에서의 울림이 ‘어느날 갑자기’ ‘데미안’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우리도 모두 데미안을 내 속에 품고 있고, 가끔 꺼내 내 앞에 앉혀두고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심연의 그 무엇을 궁금해하는 것, 주변을 바로 보고 분노코자 할 수 있는 문제에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살의나 악의 역시 선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씨앗으로부터 나왔다는 것.
그래서 헤세가 서문에 적은 “우리는 모두 같은 협곡에서 나왔다”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내 안의 데미안과 인사한 것이리라.
근원을 질문하는 것 만큼 중한 것은 없다.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순간 삶은 내 것이 된다.
그 순간 특별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데미안>의 마지막처럼 말이다. 싱클레어가 전쟁에 나갔고,
생사를 다툴 때, 옆 침상에 누운 사람과 마주했을 때의
그것. 그 ‘데미안’과 ‘나의 얼굴과 닮은 그’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데미안> 강의를 할 때면
지극히 내 해석이 깔린 밑줄로 뽑은 책 속 문장들을 소개하곤 하는데
혹 쓸모있을지도 모르기에 함께 읽자고 공유해본다.
지난 가을, 수업시간에 함께 읽으면서 조금씩 자신들의 알을 깨려는 분들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괄호 안 페이지는 해당 출판사와 번역을 잘 보시길.
『데미안』 헤르만헤세, 민음사, 전영애 옮김, 1997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p.9)
그리고 사람은 모두 유래가 같다. 어머니들이 같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p.9)
그것은 오히려 시선에 담긴 비범한 정신과 담력이었을 거야. 그 남자에게는 힘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겁냈어. 그는 <표적> 하나를 가지고 있었어. 그걸 사람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설명할 수 있었어.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한테 편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원하지. (p.40)
나는 세상의 오솔길들을 똑바로 걸으려고 했는데, 그 길들이 내게는 너무 미끄러웠던 것이다. 친절한 손 하나가 나를 잡아 구해 낸 지금, 나는 눈길 한 번 팔지 않고 곧장 어머니의 품 속으로, 포근히 에워싸인 경건한 유년의 아늑함 속으로 달려왔다. (p.62)
어떤 짐승이나 사람이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로 향하게 하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기도 하지. 그게 전부야. 네가 알고 싶었던 일도 정확하게 그래. 어떤 사람을 충분히 바라봐. 그에 대해서 그 자신보다 네가 더 잘 알게 돼 (p.75)
언제나 물어야 해, 언제나 의심해야 하구 (p.76)
나방은 자기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 자기가 꼭 가져야만 하는 것, 그것만 찾는거야.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도 이루어지는 거지. (76)
그걸 수행하거나 충분히 강하게 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망이 내 자신의 마음속에 온전히 들어 있을 때, 정말로 내 본질이 완전히 그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뿐이야. 그런 경우가 되기만 하면, 내면으로부터 너에게 명령되는 무엇인가를 네가 해보기만 하면, 그럴 때는 좋은 말에 마구를 매듯 네 온 의지를 팽팽히 펼 수 있어. (77)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116)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123)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129)
나는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제 마침내 한 번 인생의 한 토막을 살아보기를, 나에게서 나온 무엇인가를 세계 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다. (131)
당시에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서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131)
표적을 가진 우리들은, 세상의 눈에는 이상한 사람들, 위험한 광인들로 비칠지도 몰랐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깨어난 사람들, 혹은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은 점점 더 완벽한 깨어 있음을 지향했다. (194)
“그 꿈을 자신과 관련시켜 해석해?” 내가 물었다.
“자신과 관련시키느냐구? 물론이지. 아무도 자기하고 관계 없는 꿈을 꾸지는 않아. 그러나 나만 관계되는 것도 아냐. 그 점에서 네가 옳아. 난 꽤 정확하게 꿈들을 구분하지. 내 자신의 영혼 속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꿈들과, 다른 꿈들, 매우 드물지만 온 인류의 운명이 그 가운데서 암시되는 꿈들을 말이야…….” (208)
나는 서서, 손가락과 발에서부터 싸늘해져 올 때까지 긴장했다. 내게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잠시 내 속의 그 무엇인가가 단단하고도 긴밀하게 한데 모였다, 무엇인가 밝고도 환한 것이. 나는 잠시 심장에 수정 한 덩이를 지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자아라는 것을 알았다. 냉기가 가슴까지 차올랐다. (213)
넌 네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221)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222, 마지막 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