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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Trolley
정체성, 밀란쿤데라
나는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독자수용이론과 결합시켜 수업에서 이야기하곤 한다.
어떤 아이덴티티로 누구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를 건드리기 위해서다
<정체성>의 인물들의 역시 체코 작가라 그런지, 슬라빅의 의식이 분명 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다성악적인 도스토옙스키와 비슷하고,
다행스럽게도 노문학도로서 바라보기가 여느 다른 작가들보다 친절하다
본질은 쿤데라는 조국이 버렸으나 끝내 버려질 수 없는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라는 것.
대학시절, 쿤데라의 다른 소설, <농담>을 읽고 ‘다른 언어’에 대한 타의적 이해가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밀류유떼’에 대한 해석의 대화 부분에서였다.
가령 나는 ‘이것’을 이야기 하는데, 타인은 ‘이것’ 안의 자의성의 가변적인 성격을 이해하고,
그것을 규정하는 언어에 대한 낯섬을 작가는 꽤나 예민하게 건드렸다.
난 노문학도라 아무래도 슬라빅 (slavic), 슬라브 (slave)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데, 그 중에서 제일의 문제의식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고대부터 동, 서, 남 슬라브, 그러니까 지금의 동유럽이라고 불리는 폴랜드, 체코, 슬로바키아를 비롯해 러시아, 흑해 주변의 여러 국가 등은 ‘사이’에 대한 것, 자신들의 위치에서 오는 물음, 그 근원적인 질문이 생의 목숨이라 여기며 살았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이라는 체코 영화에서처럼 그들은 전통적으로 늘 유럽과 동양 사이에 편입되기도, 배제되기도 했었다. 어느 시대에는 유럽이기도, 어느 시대에는 유럽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기도 했다. 그래서 늘 경계에 있는 교집합과 같은 슬라브문학은외부의 시선에는 불안하지만 자신들의 가슴 속에는 근원의 핵에 대한 철학적 명제가 굳건히 살아있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이다.
체코의 대표작가 밀란쿤데라는 과거,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라는 거대한 두 거장의 러시아문학으로 대표되던 정체성에 대한 물음, 슬라브문학의 정신의 맥을 명백히 이어간다. 그래서 믿음과 역사가 있던 과거를 가지고 불안하고 점쳐지지 않는 미래를 사는 현대 우리들에게 큰 공감을 사고, 많은 사랑을 받지 않나 싶다. 슬라브 문학의 근본 질문, 다시 말해 <정체성>뿐만 아니라 쿤데라의 소설들에서-<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가가 핵심 테제로 삼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의 질문은 우리들에게 어떤 자아로 타인을 대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확장시킬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어떤 자아, 즉 어떤 정체성으로 작품를 읽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나는 독자수용이론을 건드린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 방점을 어디에 찍을 것인가? 그것이 하나의 정체성이라면 타인의 그것은 또 다를 수 있고, 한번에 여러개의 방점도 찍어볼 수도 있다. 무엇을 해도, 즉 어떠한 아이덴티티로 <정체성>을 읽는다한들, 그것은 샹탈과 마르크스가 마지막 심적자유의 상태에서 서로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정체성들의 갈구처럼, 독자의 자유로운 정체성은 분명 밀란 쿤데라와의 교감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