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쿤데라 강의 (9.23)

9.23일 문학을 통한 셀프 멘토링 강의

  1. 관점의 방점찍기
  2. 밀란쿤데라 읽기
  3. 정체성 (identity)의 근원에 대한 문제 의식
    그것은 과연 나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혹은 타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셀프멘토링9.23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존재자와 현존재, 세계의 건립에서
인간의 실존을 논하는 무거운 쿤데라의 주제의식이다. 과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그 근원은 무엇인가
샹탈의 변화와 장마르크의 변화에 어떤 곳을 방점으로 찍을 것인지,
정체성이란 존재와의 분리가 아닌, 파편화된 총체성으로 실존하고 있음을.
전체를 염두한 파편은 현대성의 특징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모두의 근원에서 출발했음을 언급했던 시간
그렇기에 ‘나’는 카멜레온처럼 다른 ‘모양’의 정체성을 ‘하나’이상으로 가지고 있음을 인지해야 하며
그것으로 ‘혼란스럽지’않기를. 그것이 인간 존재의 실존적 ‘사건’ 그 자체이니까.

안나카레니나 강의

9월의 강의는 안나카레리나-정체성-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연인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9월 2일의 수업은 제 개인사정 때문에 미뤄져 톨스토이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톨스토이의 에선 작가의 문학성과 예술성의 “테마” 중심으로, “구성시학” 중심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우리의 수업이 늘 그랬듯이 “나”와 작품을 겹쳐보았습니다. 물론 창작도 함께 였구요.
‘욕망’과 ‘선택’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들이 서로에게 공감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래는 수업 중 진행했던 강의자료 일부를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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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문학을 통한 셀프멘토링 강의

셀프멘토링_9.16

9월 문학강의 강의는 이렇게 진행되었어요.

9/ 2(화)
마거릿미첼, 와 ‘관점 바꾸기’ 고전 세미나
의 주인공 스칼렛을 집중 탐구해본다. 작품에서 추출한 키워드를 몇 가지 소개하여 함께 강의에서 진행한다. 학습자는 강사의 작품 스토리텔링과 편집 영상 등을 통해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작품 속 주인공과 연결된 심리학적 키워드로 작품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을 기를 수 있다. 총 세 시간 중 일부 시간은 의 독후감 (리뷰)을 써보거나 주인공 ‘스칼렛’에 투영된 ‘나’를 분석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차주 강의에서 다뤄질 문학작품을 짧게 소개하며 학습자 준비를 권고한다.

9/16 (화)
톨스토이, 와 ‘욕망’
그렇다면 나는 선택할 수 있는가?
를 읽는다. 작품의 방대한 분량 때문에 학습자가 읽어오도록 준비를 사전에 미리 공지한다. 영화 를 보고와도 무방하다.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의 심리상태를 따라가 보면서 여자의 ‘욕망’‘금기’‘불륜’에 대한 시각을 상호 토론하며 또 다른 인물‘키티’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진행한다. 욕망의 바로미터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의 현실 발편인 ‘선택’이라는 방법적 행동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선택 질문지’를 만들어 상호전달하며 서로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9/23 (화)

밀란쿤데라, 과 ‘자극’
누군가 당신에게 삶을 뒤집히게 할 만한 무언가를 준 적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학습자에게 던진다. 작가와 함께 을 읽으며 작품의 마인드맵을 그려본다. 마인드맵 작업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기를 수 있으며 짧게 마인드맵 작성법을 소개한다.
키워드는 ‘삶 속에서의 자극’이다. 학습자들은 자신의 삶 혹은 일상의 패턴을 강사개발유인물을 통해 작성해보며 자신의 시간에 대한 고찰을 시작할 수 있으며 의 여주인공, 샹탈과 같은 ‘자극’을 자신의 생활에 맞게 대체하는 문학적 상상을 시도해본다. 해당 강의를 통해 학습자의 삶에 보다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음이 기대된다.

9/30 (화)

마르그리트 뒤라스, 과 감정 사이
‘사랑’과 ‘끌림’의 사이
‘사이’ 에 대한 인문학적 개념을 성찰해본다. 교수자는 ‘사이’의 개념을 소개하며 학습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각자의 ‘사이’ 개념을 이야기해볼 수 있다. 시간, 공간, 관계에 대한 깊고 다양한 ‘사이’의 이야기로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해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사랑’과 ‘끌림’이라는 감정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해보며 학습자들은 단조로운 ‘한 가정의 엄마’에서 ‘두근거리는 삶’의 떨림을 기대할 수 있다.

내생애첫작가수업 강의 (8-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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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

셀프멘토링

어느덧 10월이다. 8, 9월 진행한 수업에서 나는 사람의 기분 좋은 변화를 보았다. 운좋게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협회에서 하는 사업에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세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나’를 찾는, ‘나’이게 하는 빛을 문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강의 시간에 나는 본다. 느낀다. 듣는다 그들의 밝아지는 표정과 그들 스스로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그 누구라도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하려고 하는 것이 보여서. 내가 확인할 수 있어서 내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빛들이 가득해서. 눈부시다 10월도 눈부시게.

자세한 내용 링크
http://www.firstwriting.kr/program/new/p03_detail.asp?menu=0102&seryears=&viewMode=&idx=524&areaCode=1

여름독서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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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는 단지 실물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아니다. art는 실물 뿐만이 아니라 스토리에 대한 ‘making’이 가능해야 한다. 여러 도서관 및 문화센터, 초등학교 정규과목 혹은 방과후 프로그램에서 ‘북아트’의 개념을 차용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면서 학습에 book을 활용해 아이들이 책이라는 ‘실물’과 보다 친숙해진 것은 아주 환영할만 하다. 그러나 그것이 ‘실물’뿐인 아트를 지향하는 활동이 된다면 분명 생각해볼 문제가 생겨난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단순히 종이를 접어 책의 외향을 making한다거나, 그 속에 약간의 스토리를 가미하는 정도로는 (이는 조금 더 발전시킨 것이지만) ‘book art’ 가 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의 주제로 그 주제의 전체의 지도를 그려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프라이빗한 스토리를 구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지난 7/28일 강의에 초등학생 친구들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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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름 어린이 도서관의 책속에서 여름나기 첫째 날의 프로그램을 기획, 구성하여 강의했다. 강의유형은 스토리텔링, 강의식, 참여자 체험으로 구성했다. “도전”이라는 주제로 워크북을 제작했다. 머리속에서 생각한 것을 ‘말하는 것’도 육체적 도전일 수 있으며, 그것을 ‘쓰고’ ‘생각하는 것’은 보다 센서티브하고 corrective,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도전이라 도전의 두 영역을 함께 담은 워크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럭저럭 지나갔지만 한, 두 페이지 가량은 조금 과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여러번 했지만 그때마다 모든 친구들은 씩씩하게 참여했고 끝날때까지 나름의 지구력으로 집중하고 참여하고 ‘진도’를 따라온다. 고맙고 예쁘다.

책 -> 자신의 이야기 -> 워크북
들으며 보며 ->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 이야기 한 것을 써 보는
프로세스로 큰 틀을 잡은 강의 주제는 였고
자신의 일상 및 포부에서의 도전에 관한 이야기, 그것을 써보며 각인된 글씨로 확인해보는 시간, ‘도전’이 거창한 것만이 아닌 가령 ‘혼자 계란후라이 요리해보기’라는 도전카드를 만든 친구처럼, 자신의 가슴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바람’같은 것도 ‘도전’에 대한 의지로 확장할 수 있는, 그런 설렘을 주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대략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요즘 엄마들은 많이 똑똑하고 지혜롭다. 그녀들은 분명 아이에게 좋은 체험을 다양하게 공급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문학은 거기에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줄 것이다. 기반은 후에 자녀들의 창의력을 분명 높여 줄 것이다. 이 역시 엄마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책, 독서, 이야기, 말, 경청 등은 문학의 표현적 방법이며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프로그램에 적절히 노출시켜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혜롭고 똑똑하다. 엄마들도 문학의 힘을 알고 있는 거다.

문학은 그런거다. 설렘 같은, 워낙 사소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어쩌면 꿈 (희망사항)이라고 마음에 새겨지기 직전에 그런 설렘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것, 그런 게 문학이다. 어떤 이에게 문학은 종이로 책을 만드는 것일 수도, 어떤 이에겐 삶의 신념을 만들게 해주는 것일 수도, 어떤 이에겐 꿈을 꾸게 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문학은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기에 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데미안을 통한 “나를 찾는 길”

데미안_최종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바탕으로 자아에 대한 탐색 프로그램을 개발,
독서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교육컨설팅그룹 “루츠알레”에서 퍼블릭리더 PLC 프로그램
독서토론 “나를 찾는 길” 을 헤르만헤세, 데미안을 통해 찾는 “자아”라는
프로그램명으로 문학을 통한 청소년 비전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2014. 2)

리스본행야간열차

리스본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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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없는 집중, 고정할 곳이 있는 시선, 저 밑의 울림. 그것이 내가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혼자 찾는 독립영화관에서는 영화가 끝난 후 같은 공간에 영화에 대해 즉석에서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일테지만, 엔딩크레딧을 천천히, 충분하게 읽고, 공유의 감동에 대해 박수를 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아트’에 관한 작품들을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원어의 아름다움이 조금 묻히는 게 언제나 흠이다. night train to Lisbon.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급’ 떠나게 된, 그리고 리스본에서 일어나는-‘일종의 관계에 대한 비밀을 찾아다니는’- 이야기. 그 안의 옴니버스로 연출된 ‘언어의 연금술사’ 책의 작가 ‘아마데우 프라두’에 대한 이야기까지. 독립영화 치고 대사가 많아 마치 상업과 예술의 그 사이에서 애매한 시선을 두게 했지만, 한시도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할 정도로 스크린에 몸을 바짝 기대었다. 정말 재밌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딱, 그런 영화였으니 더이상 어떤 말이 필요한가. 훌륭했다.

영화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지나온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 대한 입장”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과거와 현재의 주인공들이 그들의 의식공간 안에서 “과연 어떤 삶이어야 하는가?”를 강렬하게 질문한다. 신과 우주에 대한 일종의 유신론과 무신론의 입장으로 확대될 수 있는 철학적인 담론도 영화가 끝난 후 한바탕 가능할 정도다. 현실에 침잠되어 있는 ‘보통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특별한 계기) 새로운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을 먼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일상’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내려놓을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늘 새로운 삶을 갈망하고, 열망할 뿐이다. 그러다 무언가에 이끌려 -이것을 조절하는 힘은, 아마도 생각지도 못하게 이끌린 힘 같은 것일 테다 – 어느날 기차를 타 버렸다.

기차라는 장치는 문학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공간의 연결고리이다. 작가 톨스토이나 파스쩨르나크도 즐겨 사용한 소재이다. (안나카레니나나 닥터 지바고 등의 작품) 기차는 우연과 운명을 이어주기도 하며 미지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인간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향하는 영화 속 현재인물, ‘그레고리우스’는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는 새롭지만 오래된 ‘과거인물’들과 마주한다. 과거 포르투갈 독재 정치 시절을 배경으로 했던 레지스탕스 주인공들의 삶을 의도적으로 찾아가며 자신의 삶에 대한 변화를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다”라는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 역)의 묘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과거인물들은 열망과 자유와 변화를 꿈꾸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고루한 일상을 살아내고 견뎌내왔던 ‘그레고리우스’에게 리스본의 며칠은 마법과 같은 경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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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와 드라마는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당위적이고 그런 작품은 훌륭하지 않을 수 없다.” 를 주장하는 ‘문학도’라서, 원작품에 필름의 색을 입혔을 때, 원작의 영감과 감동이 덜 반영된 것들을 자주 목격한 터, 그래서 이 역시 소설보다 덜하겠지, 했다. 그러나 영화 ‘리스본행야간열차’는 원작 보다 훌륭했다. 정말로, 정말로 그러했다. 적어도 눈은 황홀했으니.

리스본은 가보지 못했지만, 필름에서 본 리스본은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아름답고 고상했으며 사소한 이야기마저도 귀여운 소문이 될 법한 조용한 곳이었다. 영화는 리스본의 지붕과 건물 몇 개의 피사체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아래 세 번째는 아마데우 프라두와 스테파니아가 새로운 삶을 위해 갔으나 헤어짐을 말했던 아이러니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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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속에서는 대사가 없어도 관객이 스스로 작품과 대화하기 때문에 매 장면이 수다스럽다. 마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입체적이고 시끄럽다. 적어도 보는이에겐. 그렇게 ‘리스본행야간열차’는 내게 삶과 인생에 대한 수다를 다시 하도록 재촉하며 달렸다. 그대, 다시 시끄럽고 즐거운 인생을 열망토록.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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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안나카레리나의 애피그라피로 이렇게 썼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르게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는 기만과 허위라는 단어와 가장 자주 마주친다. 사람에게 어떤 삶이 진짜 필요한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에게 솔직하기 위해 브론스키를 사랑했지만 그 끝은 기만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죽음 뿐이었다. 그의 삶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가? 솔직함과 삶에 대한 ‘진리’적 잣대는 과연 양립 가능한가.
안나를 보면서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에 무조건적인 동의를 할 수 없던 불편한 독자. 그게 나였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기만과 허위로 가득찬 삶 속에서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불행한 가정에선 욕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잘못된 열정과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모양이 제각기 다를 것이다.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본다. 문학 뿐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의 중심 구성 요소인 모티프나 테마는 무엇일까? 모티프는 말 그대로 동기 혹은 동인일 텐데, 동기나 동인은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테마는 주제라고도 하는데 흔히 떠올리듯이 교훈과 같은 것이 곧 주제일까? 그렇다면 문학 작품은 교훈서란 말인가? 아니다. 설혹 문학 작품의 주제가 교훈적이고 윤리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격언이나 규율처럼 강요되지 않는다. 그러한 주제의 가치는 독자에 의해 체험돼야 한다. 그것이 예술에서 주제가 실천되는 방식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품에서 빈번하게 반복하는 요소이고, 테마는 여러 모티프들을 모으는 핵심 모티브다. 그러니까 테마나 모티프는 정리된 명제로 독자에게 제시되지 않고 인물들의 생활과 환경을 통해서 은근하게 체험되고 느껴지다가 점차 뚜렷해져서 타당성을 획득한다.
쉽게 알기 위해서 [안나 카레니나]의 테마를 미리 말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이다. 그러니까 작품 처음에 가장 자주 나오는 기만이나 허위는 <>의 테마, 즉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핵심 모티프에 긴밀하게 연결되는 삶의 태도인 것이다.

톨스토이는 익숙한 모든 것을 언제나 낯설게 바라보며 작품을 쓴다. 그것이 창의성의 바탕이 되었다. 우리는 톨스토이의 예술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예술의 임무는 논리적인 형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것을 이해하게 하고 또 접근하게 하는 데 있다. 진정한 예술적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감지할 때 나온다. 이후 러시아의 문예학자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톨스토이를 예로 들면서 문학과 예술에서 근본이 되는 기법이 ‘낯설게 하기’라고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예술의 창의성이 바로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면서 성찰하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후부터 ‘낯설게 하기’는 현재까지 모든 예술 이론들이 기반으로 삼는 가장 중요한 예술 원리로 다뤄지고 있다. 톨스토이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여 인정하는 윤리를 세우고, 또 그것이 자연스러운 본능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진실은 역설적이다. 이성으로 내린 똑바른 결론은 그르고, 경험으로 내린 어리석은 결론은 올바르다”라고 했다. 낯설게 바라보는 직접 체험과 체득에 기반한 깨우침을 믿었다.

함께 첨부된 사진은 이반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이다. 십년 전 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를 할 때 머물렀던 하숙집 벽에 저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저 푸른색의 여인이 걱정스럽게 무서웠다. 나는 그림 속 여자의 시선에 조금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녀가 안나였다. 톨스토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끄람스꼬이가 그린 안나가 자살하러 가던 기차역으로 가던 마지막 날의 모습이라 한다. 예술 작품의 해석은 분명 독자의 몫이다. 그런듯 언제의 안나든지 그녀의 눈빛에 감화되는 사실, 그 느낌의 흔적을 따라간다. 기만과 허위로 가득찬 세상을 관조하는 한 인간의 눈.

안나의 올케, 돌리가 안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사랑에 관한 말이었다. 현대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것을 톨스토이가 19세기에 썼다.
“나는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언제나 너를 사랑해. 글쎄, 사랑한다면 그 사람 전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 주문한 게 절대 아니거든”

그래서 진실한 사랑은 욕망과 기만과 허위와는 거리가 멀다. 안나가 그토록 바랐던 진실한 그것은 순수한 열정과 딱, 그만큼인 사랑,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문학’하는’ 이유

아뜰리에

toutedu를 만들어서 문학을 통해 삶과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지내고 있다
문학예술프로젝트를 홀로 시작했다. 끝도 없는 프로젝트.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는
문학은 사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언어 속에 온 정신이 오롯이 담긴 작가를 읽으면서
그들의 예술에 내가 벌거벗을 때면
문학과의 대화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져 이토록 처절해진다

그래서 나름의 겸손함으로 가능한 많은 분들과 함께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겸손의 뿌리가 소통의 창에 뿌리내려
보다 많은 사람이 문학을 사랑할 수 있게
보다 자주 시를 읽을 수 있게
내가 문학을 하게 하는 힘,
보다 나로서도 문학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이 더욱 필요하다
많은 도움과 함께 하고 싶다
누구나 함께하길 기도한다
겸손으로 그리고 환대로

시와 상상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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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텔링은 초, 중학생을 대상으로 ‘시’를 통해 창의적 상상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고민하면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현재까지 성북휴먼라이브러리를 통해,
뚜에듀 나눔강의를 통해 초등학생들이 강의를 들었고 종로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멘토강의로 멘티와 함께 했다
신기한 것은 모든 아이들이 그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분명 밖으로 표출한다는 것.
아이들은 본래 예술가니까. 피카소가 말했었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로 태어난다고.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른이 이성으로 접근할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고, 그들만의 언어인 것이다.
나는 이런 활동이 좋다. 문학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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