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시선의 간극 / 박소진 시집
본인의 책을 본인 스스로 이야기 하는 것 만큼 정색할 일이거나 혹은 투명한 일은 없다. 시 쓴 이가 시를 이야기한다. 언어의 존재 그 자체의 세계가 현존재로 인해 레테의 강을 건너는 모습을 목격했었다. 저자의 언어가 번역으로 인해 그들에게는 또 다른 낯선 언어로 전환되는 순간, 그 표면은 파문으로 일렁거렸다. 그 순간의 감정을 들여다보니 저자의 신념이 보였다. 노문을 공부해, 아니 러시아. 슬라브라 하자. 슬라브문화가 가진 ‘사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저자의 20대를 지배했었다. 순간은 삶과 삶의 간극이다. 삶의 경계에서 구르는 사이클에 밟히고, 구르고, 피하는 동안 여러 시선에 몸이 무거워진다. 본래 첫 제목은 였다. 지금 생각하니 엄청난 패기가 아닐 수 없다. 직설적이고 전통적인. 시간이라는 보편의 권위 앞에서 누구나 흔적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한다. 그 곳, 그 때, 그리고 그 관계가 맺어내는 낯선 의미가 가득한 ‘진짜 이유’를 말하고 싶었다.
1부는 ‘낯익은 언어’로 ‘낯설게 하기’를 반대로 시도한 경험을 시로 적었다. 2부는 ‘사이-클’로 구조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잔상과 잃어버린 허무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온다. 3부는 ‘러시아 답신’으로 저자의 러시아, 인문학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한다. 4부는 모든 방이다. 사람마다 방이 있다. 있든 없든, 그 수가 많든 적든, 크든 작든. 상관없다. 아무튼 저자의 모든 방에는 여러 모양의 감정들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방에서 나갔다 다시 돌아온 그 누군가는 익숙함으로 과거를 추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읽는 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21세기 오늘날 우리는 힐링을 돈을 주고 읽는다. 읽는 것 조차 노동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시는 아니다. 느껴지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느껴진다면 시는 살아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고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 된다. 우리는 누구나 노래한다. 노래의 근원은 모두 시이다. 마치 영화의 모든 원작은 고전이라는 사실 처럼. 시집이 팔리지 않는 책이라 그 자리에 수 많은 자기계발서를 대신 꽂아둔 책꽂이를 비난하지 않는 이유도 언젠간 조금 많이 불려질 노래가 되어 그 근원을 찾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다. 톨스토이는 에서 썼다. “진정한 예술은 어린아이가 웃으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웃게 되는 그런 것이다. 감염되는 것이다” 시는 산문에 ‘긴장감’은 주었으나 ‘전이’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시의 힘이다. 글의 힘보다 시의 힘을 믿는 저자는 시집 이 ‘사이’를 공유하는 많은 이들에게 전이를 선물할 것이라 조심스레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