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로의 데미안 (10.7, 10.14일 강의)

내게 헤세의 데미안은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 어떤 책보다 중심을 가르쳐 준 나의 넘버원.

데미안으로 강의를 곳곳에서 하는데도
늘 새롭다. 타자는 늘 다르고, 지금-여기의 상황도 늘 다르니까
순간, 맞닥뜨린 작품 자체는 항상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한다.
체험 이후에는, 대면 이후에 얻는 질문은 특정 의지를 낳게 함을 믿는다
데미안은 내게도, 타자에게도 그렇다.

10월 7일과 14일에는 데미안을 읽었다.
수업 중, 사이에 떠돌던 공기가 몰입으로 침잠하더니
그 속에서 반짝이는 의지로 변화해 부유했다.

나의 세계에는 어떤 파편이 있는가.
데미안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나의 알은 깨질 수 있는가, 혹은 그럴 수 없는가.
등의 이야기.

그렇게 조금씩 화요일의 문학셀프멘토링에 함께하시는 분들은
날개를 갖고 알을 깨며 자신의 신에게로 날아간다
이제 나는 여기에 조금 더 큰 날개를 달아 많은 곳에서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변화

셀프3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8월부터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들의 열정에 오히려 감사하다.
화요일 진행하는 문학 셀프멘토링 수업에
한 주 결석에도 그렇게 안타까워 하시고
오늘 안 왔으면 ‘큰일’ 날 뻔 하셨다 하시고
“선생님을 만나서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라고 최고의 칭찬을 해주신다.

나는 얼마나 작은가.
대신 희망은 컸다.
내가 타자의 삶에 조금이라도 새로운 생기가 되길 바랐었다.
문학이, 나의 강의 컨텐츠가 그런 ‘존재’로 남기를.

이제 반 정도 달려온 지금
나와 함께 하는 화요일의 ‘우리들’은 나의 강의목표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여기’에서 하고 싶은 것을 적기 시작했고,
내 안의 나를 진짜 나라는 존재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나를 사는 나를 발견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하고 싶던 무언가와 이루고 싶던 꿈과 새롭게 생기게 된 오래지 않을 미래의 꿈을
바로 보기 시작했다.

조금씩 달라지는 그들의 변화가 눈에 비친다.
이게 내가 문학하는 이유이다.
우리네 삶의 총체에서 나는 파편에 불과하나,
그 파편의 전체를 전제하므로 우리들의 총체에 파문을 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분들 편에 서 응원한다.
그분들이 내게 고마워하고 감사하다,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주실 때마다 나 역시 ‘지금-여기’에서 나로서 바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