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강의는 안나카레리나-정체성-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연인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9월 2일의 수업은 제 개인사정 때문에 미뤄져 톨스토이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톨스토이의 에선 작가의 문학성과 예술성의 “테마” 중심으로, “구성시학” 중심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우리의 수업이 늘 그랬듯이 “나”와 작품을 겹쳐보았습니다. 물론 창작도 함께 였구요.
‘욕망’과 ‘선택’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들이 서로에게 공감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래는 수업 중 진행했던 강의자료 일부를 올려놓습니다.
[태그:]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안나카레리나의 애피그라피로 이렇게 썼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르게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는 기만과 허위라는 단어와 가장 자주 마주친다. 사람에게 어떤 삶이 진짜 필요한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에게 솔직하기 위해 브론스키를 사랑했지만 그 끝은 기만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죽음 뿐이었다. 그의 삶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가? 솔직함과 삶에 대한 ‘진리’적 잣대는 과연 양립 가능한가.
안나를 보면서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에 무조건적인 동의를 할 수 없던 불편한 독자. 그게 나였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기만과 허위로 가득찬 삶 속에서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불행한 가정에선 욕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잘못된 열정과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모양이 제각기 다를 것이다.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본다. 문학 뿐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의 중심 구성 요소인 모티프나 테마는 무엇일까? 모티프는 말 그대로 동기 혹은 동인일 텐데, 동기나 동인은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테마는 주제라고도 하는데 흔히 떠올리듯이 교훈과 같은 것이 곧 주제일까? 그렇다면 문학 작품은 교훈서란 말인가? 아니다. 설혹 문학 작품의 주제가 교훈적이고 윤리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격언이나 규율처럼 강요되지 않는다. 그러한 주제의 가치는 독자에 의해 체험돼야 한다. 그것이 예술에서 주제가 실천되는 방식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품에서 빈번하게 반복하는 요소이고, 테마는 여러 모티프들을 모으는 핵심 모티브다. 그러니까 테마나 모티프는 정리된 명제로 독자에게 제시되지 않고 인물들의 생활과 환경을 통해서 은근하게 체험되고 느껴지다가 점차 뚜렷해져서 타당성을 획득한다.
쉽게 알기 위해서 [안나 카레니나]의 테마를 미리 말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이다. 그러니까 작품 처음에 가장 자주 나오는 기만이나 허위는 <>의 테마, 즉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핵심 모티프에 긴밀하게 연결되는 삶의 태도인 것이다.
톨스토이는 익숙한 모든 것을 언제나 낯설게 바라보며 작품을 쓴다. 그것이 창의성의 바탕이 되었다. 우리는 톨스토이의 예술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예술의 임무는 논리적인 형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것을 이해하게 하고 또 접근하게 하는 데 있다. 진정한 예술적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감지할 때 나온다. 이후 러시아의 문예학자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톨스토이를 예로 들면서 문학과 예술에서 근본이 되는 기법이 ‘낯설게 하기’라고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예술의 창의성이 바로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면서 성찰하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후부터 ‘낯설게 하기’는 현재까지 모든 예술 이론들이 기반으로 삼는 가장 중요한 예술 원리로 다뤄지고 있다. 톨스토이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여 인정하는 윤리를 세우고, 또 그것이 자연스러운 본능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진실은 역설적이다. 이성으로 내린 똑바른 결론은 그르고, 경험으로 내린 어리석은 결론은 올바르다”라고 했다. 낯설게 바라보는 직접 체험과 체득에 기반한 깨우침을 믿었다.
함께 첨부된 사진은 이반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이다. 십년 전 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를 할 때 머물렀던 하숙집 벽에 저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저 푸른색의 여인이 걱정스럽게 무서웠다. 나는 그림 속 여자의 시선에 조금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녀가 안나였다. 톨스토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끄람스꼬이가 그린 안나가 자살하러 가던 기차역으로 가던 마지막 날의 모습이라 한다. 예술 작품의 해석은 분명 독자의 몫이다. 그런듯 언제의 안나든지 그녀의 눈빛에 감화되는 사실, 그 느낌의 흔적을 따라간다. 기만과 허위로 가득찬 세상을 관조하는 한 인간의 눈.
안나의 올케, 돌리가 안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사랑에 관한 말이었다. 현대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것을 톨스토이가 19세기에 썼다.
“나는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언제나 너를 사랑해. 글쎄, 사랑한다면 그 사람 전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 주문한 게 절대 아니거든”
그래서 진실한 사랑은 욕망과 기만과 허위와는 거리가 멀다. 안나가 그토록 바랐던 진실한 그것은 순수한 열정과 딱, 그만큼인 사랑,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