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작업, 체홉

그냥 읽는 것과
원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읽는 것은 다르다.
2014, 가을학기 대학원 수업에선 체홉을 읽는다.

예전 상트의 넵스키, 돔끄니기에서 체홉의 전 작품이 모아져 있는 원서를 샀었다.
그 하드커버의 반짝이는 디자인과 러시아 냄새가 나던 종이의 그 책을 기억한다.
지하철 짐 칸에 두고 내려 영영 찾지 못했다.
멋모르던 학부 시절, 나는 모르고 체홉을 만났고
이제는 좀 알 것 같은 시대에 그를 다시 만난다.

정말 즐겁다.
문학을 하는 것은,
문학을 읽는 것은
그리고 문학을 가슴으로 만나는 것은.

본론으로 들어와 체홉에 대한 짧은 개관은..

시대를 따르지 못한다고 해서 절대 불운한 것은 아니라는 것.

포스트모던 시대에 포스트모던식의 문학을 한다면 그럴 수 있다. 여기서 그럴 수 있다라는 것은 주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포스트모더니즘식의 변형적 사고를 했다면 그것은 Mirski 가 체홉에게 했던 “사상이 없고, 철학적명제도 없다” 라는 아쉬운 비평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체홉은 진정 진실하다. 작가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얼마나 진실했냐면 시중에 나와있는 번역본과 비평서로 알 수 없다. 그의 원문을 직접 읽어야 한다. 강의는 체홉의 원문을 읽는 것을 업으로 한다. 그를 읽어 내려갈 때 만나게 될 그가 기대된다.

문학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머리와 가슴으로 뭔가를 느낀다. 작품으로부터 오는 그 무언가가 보내는 신호에 젖는다. 그것이 문학성과 예술성이다. 체홉이 얼마나 혼자서, 조용히, 울고 있었는가 문학성과 예술성을 세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본다. 테마 중심, 구조시학 중심, 미학의 관점으로 살핀다.

관리의 죽음, 뚱뚱이와 홀쭉이, 카멜레온, 휘어진 거울, 농담, 우수를 읽고 나의 고유한 정의를 내려본다.
시점과 성격화에 대해. 그것은 다음 포스팅에…

캡처

마르그리트 뒤라스 강의 (9.30)

9월 30일에 예술가의 집에서 진행했던 9월, 여자 고전을 말하다의 마지막 강의는
뒤라스의 을 통한 ‘나’의 발견이었습니다.

강의는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과 무의식과 나 사이
‘사랑’과 ‘끌림’의 사이
‘사이’의 개념
자신이 생각하는 각자의 ‘사이’ 개념
시간, 공간, 관계에 대한 깊고 다양한 ‘사이’의 이야기로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해보자
  1.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사랑’과 ‘끌림’이라는 감정에 대한 토론

  2. 여자에 대한 총체적 접근, 그리고 ‘나’

단조로운 ‘한 가정의 엄마’에서 ‘두근거리는 삶’의 떨림을 기대할 수 있기를.

에서 다루는 정신분석학적인 ‘욕망’의 관점을
내 안의 ‘그녀’ 혹은 ‘나’의 목소리에 대입하여 그것의 정체성을 스스로 탐색했던 시간.
‘나’라는 정체성은 내게 그토록 ‘낯설게’ (안나 카레리나처럼)
‘관계를 통한 타인으로부터 ‘ (쿤데라의 샹탈처럼)
‘자조적 의지로부터’ (바람과함께 사라지다)
그리고 내 안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욕망의 그것으로부터 (연인)
여자를 말하고, 엄마를 말하고, 아내를 말하고, 온전한 나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9월 강의까지 마치고 이제 10월의 강의 테마는 ‘멘토’입니다.
내 삶의 멘토로서 나는 자신감있게 우뚝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추가 접수를 도서관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해오름도서관 (서울 성북구) 에 문의주시면 됩니다.
문체부주관, 한국도서관협회 주최 내생애첫작가수업, 문학을 통한 셀프 멘토링

연인

0930사진

0930사진2 (2)

바람과함께사라지다, 마거릿미첼 강의 (9.25)

9월 25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강의는
작품 속 ‘스칼렛’의 목소리에 나의 목소리를 대입하는 구성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대부분 참가자가 ‘여자’인 특성이 있어 보다 감성적으로 공감하며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스칼렛의 목소리를 통해 ‘나’, ‘여자인 나’로서의 삶을 거리두기 하며 바라보았습니다.
‘ㅅ’의 시학에 대한 사유를 제시했습니다.

수업시간에 활용한 영상을 업로드 하려고 했는데,,
이게 왠걸. 워드프레스는 영상을 올리려면 추가로 돈을 내야 하는 사실,,
텀블러는 아닌데..

셀프멘토링0925

밀란쿤데라 강의 (9.23)

9.23일 문학을 통한 셀프 멘토링 강의

  1. 관점의 방점찍기
  2. 밀란쿤데라 읽기
  3. 정체성 (identity)의 근원에 대한 문제 의식
    그것은 과연 나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혹은 타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셀프멘토링9.23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존재자와 현존재, 세계의 건립에서
인간의 실존을 논하는 무거운 쿤데라의 주제의식이다. 과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그 근원은 무엇인가
샹탈의 변화와 장마르크의 변화에 어떤 곳을 방점으로 찍을 것인지,
정체성이란 존재와의 분리가 아닌, 파편화된 총체성으로 실존하고 있음을.
전체를 염두한 파편은 현대성의 특징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모두의 근원에서 출발했음을 언급했던 시간
그렇기에 ‘나’는 카멜레온처럼 다른 ‘모양’의 정체성을 ‘하나’이상으로 가지고 있음을 인지해야 하며
그것으로 ‘혼란스럽지’않기를. 그것이 인간 존재의 실존적 ‘사건’ 그 자체이니까.

안나카레니나 강의

9월의 강의는 안나카레리나-정체성-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연인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9월 2일의 수업은 제 개인사정 때문에 미뤄져 톨스토이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톨스토이의 에선 작가의 문학성과 예술성의 “테마” 중심으로, “구성시학” 중심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우리의 수업이 늘 그랬듯이 “나”와 작품을 겹쳐보았습니다. 물론 창작도 함께 였구요.
‘욕망’과 ‘선택’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들이 서로에게 공감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래는 수업 중 진행했던 강의자료 일부를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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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문학을 통한 셀프멘토링 강의

셀프멘토링_9.16

9월 문학강의 강의는 이렇게 진행되었어요.

9/ 2(화)
마거릿미첼, 와 ‘관점 바꾸기’ 고전 세미나
의 주인공 스칼렛을 집중 탐구해본다. 작품에서 추출한 키워드를 몇 가지 소개하여 함께 강의에서 진행한다. 학습자는 강사의 작품 스토리텔링과 편집 영상 등을 통해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작품 속 주인공과 연결된 심리학적 키워드로 작품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을 기를 수 있다. 총 세 시간 중 일부 시간은 의 독후감 (리뷰)을 써보거나 주인공 ‘스칼렛’에 투영된 ‘나’를 분석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차주 강의에서 다뤄질 문학작품을 짧게 소개하며 학습자 준비를 권고한다.

9/16 (화)
톨스토이, 와 ‘욕망’
그렇다면 나는 선택할 수 있는가?
를 읽는다. 작품의 방대한 분량 때문에 학습자가 읽어오도록 준비를 사전에 미리 공지한다. 영화 를 보고와도 무방하다.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의 심리상태를 따라가 보면서 여자의 ‘욕망’‘금기’‘불륜’에 대한 시각을 상호 토론하며 또 다른 인물‘키티’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진행한다. 욕망의 바로미터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의 현실 발편인 ‘선택’이라는 방법적 행동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선택 질문지’를 만들어 상호전달하며 서로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9/23 (화)

밀란쿤데라, 과 ‘자극’
누군가 당신에게 삶을 뒤집히게 할 만한 무언가를 준 적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학습자에게 던진다. 작가와 함께 을 읽으며 작품의 마인드맵을 그려본다. 마인드맵 작업을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기를 수 있으며 짧게 마인드맵 작성법을 소개한다.
키워드는 ‘삶 속에서의 자극’이다. 학습자들은 자신의 삶 혹은 일상의 패턴을 강사개발유인물을 통해 작성해보며 자신의 시간에 대한 고찰을 시작할 수 있으며 의 여주인공, 샹탈과 같은 ‘자극’을 자신의 생활에 맞게 대체하는 문학적 상상을 시도해본다. 해당 강의를 통해 학습자의 삶에 보다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음이 기대된다.

9/30 (화)

마르그리트 뒤라스, 과 감정 사이
‘사랑’과 ‘끌림’의 사이
‘사이’ 에 대한 인문학적 개념을 성찰해본다. 교수자는 ‘사이’의 개념을 소개하며 학습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각자의 ‘사이’ 개념을 이야기해볼 수 있다. 시간, 공간, 관계에 대한 깊고 다양한 ‘사이’의 이야기로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해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사랑’과 ‘끌림’이라는 감정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해보며 학습자들은 단조로운 ‘한 가정의 엄마’에서 ‘두근거리는 삶’의 떨림을 기대할 수 있다.

내생애첫작가수업 강의 (8-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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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

셀프멘토링

어느덧 10월이다. 8, 9월 진행한 수업에서 나는 사람의 기분 좋은 변화를 보았다. 운좋게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협회에서 하는 사업에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세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나’를 찾는, ‘나’이게 하는 빛을 문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강의 시간에 나는 본다. 느낀다. 듣는다 그들의 밝아지는 표정과 그들 스스로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그 누구라도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하려고 하는 것이 보여서. 내가 확인할 수 있어서 내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빛들이 가득해서. 눈부시다 10월도 눈부시게.

자세한 내용 링크
http://www.firstwriting.kr/program/new/p03_detail.asp?menu=0102&seryears=&viewMode=&idx=524&areaCode=1

리스본행야간열차

리스본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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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없는 집중, 고정할 곳이 있는 시선, 저 밑의 울림. 그것이 내가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혼자 찾는 독립영화관에서는 영화가 끝난 후 같은 공간에 영화에 대해 즉석에서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일테지만, 엔딩크레딧을 천천히, 충분하게 읽고, 공유의 감동에 대해 박수를 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아트’에 관한 작품들을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원어의 아름다움이 조금 묻히는 게 언제나 흠이다. night train to Lisbon.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급’ 떠나게 된, 그리고 리스본에서 일어나는-‘일종의 관계에 대한 비밀을 찾아다니는’- 이야기. 그 안의 옴니버스로 연출된 ‘언어의 연금술사’ 책의 작가 ‘아마데우 프라두’에 대한 이야기까지. 독립영화 치고 대사가 많아 마치 상업과 예술의 그 사이에서 애매한 시선을 두게 했지만, 한시도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할 정도로 스크린에 몸을 바짝 기대었다. 정말 재밌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딱, 그런 영화였으니 더이상 어떤 말이 필요한가. 훌륭했다.

영화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지나온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 대한 입장”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과거와 현재의 주인공들이 그들의 의식공간 안에서 “과연 어떤 삶이어야 하는가?”를 강렬하게 질문한다. 신과 우주에 대한 일종의 유신론과 무신론의 입장으로 확대될 수 있는 철학적인 담론도 영화가 끝난 후 한바탕 가능할 정도다. 현실에 침잠되어 있는 ‘보통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특별한 계기) 새로운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을 먼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일상’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내려놓을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늘 새로운 삶을 갈망하고, 열망할 뿐이다. 그러다 무언가에 이끌려 -이것을 조절하는 힘은, 아마도 생각지도 못하게 이끌린 힘 같은 것일 테다 – 어느날 기차를 타 버렸다.

기차라는 장치는 문학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공간의 연결고리이다. 작가 톨스토이나 파스쩨르나크도 즐겨 사용한 소재이다. (안나카레니나나 닥터 지바고 등의 작품) 기차는 우연과 운명을 이어주기도 하며 미지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인간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향하는 영화 속 현재인물, ‘그레고리우스’는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는 새롭지만 오래된 ‘과거인물’들과 마주한다. 과거 포르투갈 독재 정치 시절을 배경으로 했던 레지스탕스 주인공들의 삶을 의도적으로 찾아가며 자신의 삶에 대한 변화를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다”라는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 역)의 묘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과거인물들은 열망과 자유와 변화를 꿈꾸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고루한 일상을 살아내고 견뎌내왔던 ‘그레고리우스’에게 리스본의 며칠은 마법과 같은 경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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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와 드라마는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당위적이고 그런 작품은 훌륭하지 않을 수 없다.” 를 주장하는 ‘문학도’라서, 원작품에 필름의 색을 입혔을 때, 원작의 영감과 감동이 덜 반영된 것들을 자주 목격한 터, 그래서 이 역시 소설보다 덜하겠지, 했다. 그러나 영화 ‘리스본행야간열차’는 원작 보다 훌륭했다. 정말로, 정말로 그러했다. 적어도 눈은 황홀했으니.

리스본은 가보지 못했지만, 필름에서 본 리스본은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아름답고 고상했으며 사소한 이야기마저도 귀여운 소문이 될 법한 조용한 곳이었다. 영화는 리스본의 지붕과 건물 몇 개의 피사체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아래 세 번째는 아마데우 프라두와 스테파니아가 새로운 삶을 위해 갔으나 헤어짐을 말했던 아이러니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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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속에서는 대사가 없어도 관객이 스스로 작품과 대화하기 때문에 매 장면이 수다스럽다. 마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입체적이고 시끄럽다. 적어도 보는이에겐. 그렇게 ‘리스본행야간열차’는 내게 삶과 인생에 대한 수다를 다시 하도록 재촉하며 달렸다. 그대, 다시 시끄럽고 즐거운 인생을 열망토록.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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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안나카레리나의 애피그라피로 이렇게 썼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르게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는 기만과 허위라는 단어와 가장 자주 마주친다. 사람에게 어떤 삶이 진짜 필요한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에게 솔직하기 위해 브론스키를 사랑했지만 그 끝은 기만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죽음 뿐이었다. 그의 삶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가? 솔직함과 삶에 대한 ‘진리’적 잣대는 과연 양립 가능한가.
안나를 보면서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에 무조건적인 동의를 할 수 없던 불편한 독자. 그게 나였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기만과 허위로 가득찬 삶 속에서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불행한 가정에선 욕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잘못된 열정과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모양이 제각기 다를 것이다.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본다. 문학 뿐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의 중심 구성 요소인 모티프나 테마는 무엇일까? 모티프는 말 그대로 동기 혹은 동인일 텐데, 동기나 동인은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테마는 주제라고도 하는데 흔히 떠올리듯이 교훈과 같은 것이 곧 주제일까? 그렇다면 문학 작품은 교훈서란 말인가? 아니다. 설혹 문학 작품의 주제가 교훈적이고 윤리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격언이나 규율처럼 강요되지 않는다. 그러한 주제의 가치는 독자에 의해 체험돼야 한다. 그것이 예술에서 주제가 실천되는 방식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품에서 빈번하게 반복하는 요소이고, 테마는 여러 모티프들을 모으는 핵심 모티브다. 그러니까 테마나 모티프는 정리된 명제로 독자에게 제시되지 않고 인물들의 생활과 환경을 통해서 은근하게 체험되고 느껴지다가 점차 뚜렷해져서 타당성을 획득한다.
쉽게 알기 위해서 [안나 카레니나]의 테마를 미리 말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이다. 그러니까 작품 처음에 가장 자주 나오는 기만이나 허위는 <>의 테마, 즉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핵심 모티프에 긴밀하게 연결되는 삶의 태도인 것이다.

톨스토이는 익숙한 모든 것을 언제나 낯설게 바라보며 작품을 쓴다. 그것이 창의성의 바탕이 되었다. 우리는 톨스토이의 예술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예술의 임무는 논리적인 형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것을 이해하게 하고 또 접근하게 하는 데 있다. 진정한 예술적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감지할 때 나온다. 이후 러시아의 문예학자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톨스토이를 예로 들면서 문학과 예술에서 근본이 되는 기법이 ‘낯설게 하기’라고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예술의 창의성이 바로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면서 성찰하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후부터 ‘낯설게 하기’는 현재까지 모든 예술 이론들이 기반으로 삼는 가장 중요한 예술 원리로 다뤄지고 있다. 톨스토이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여 인정하는 윤리를 세우고, 또 그것이 자연스러운 본능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진실은 역설적이다. 이성으로 내린 똑바른 결론은 그르고, 경험으로 내린 어리석은 결론은 올바르다”라고 했다. 낯설게 바라보는 직접 체험과 체득에 기반한 깨우침을 믿었다.

함께 첨부된 사진은 이반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이다. 십년 전 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를 할 때 머물렀던 하숙집 벽에 저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저 푸른색의 여인이 걱정스럽게 무서웠다. 나는 그림 속 여자의 시선에 조금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녀가 안나였다. 톨스토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끄람스꼬이가 그린 안나가 자살하러 가던 기차역으로 가던 마지막 날의 모습이라 한다. 예술 작품의 해석은 분명 독자의 몫이다. 그런듯 언제의 안나든지 그녀의 눈빛에 감화되는 사실, 그 느낌의 흔적을 따라간다. 기만과 허위로 가득찬 세상을 관조하는 한 인간의 눈.

안나의 올케, 돌리가 안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사랑에 관한 말이었다. 현대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것을 톨스토이가 19세기에 썼다.
“나는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언제나 너를 사랑해. 글쎄, 사랑한다면 그 사람 전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 주문한 게 절대 아니거든”

그래서 진실한 사랑은 욕망과 기만과 허위와는 거리가 멀다. 안나가 그토록 바랐던 진실한 그것은 순수한 열정과 딱, 그만큼인 사랑,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happy new ME

해피뉴미

2013년 12월 말에 내가 기획했던
‘시’로 자아 찾기 프로그램, 해피뉴미에 대한 이야기다.
오랫동안 고민한 콘텐츠로 진짜 내 안의 나 찾는 방법을
시로 접근했다. 치유적방법의 문학을 활동으로 고민해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해피뉴미를 조심스럽게 세상에 내보였다
그때의 포스팅을 이곳에도 해본다.
해피뉴미 프로그램은 운영하고 있는 모두의 교육 뚜에듀에서 신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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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의 인식과 관심

happy new me의 목표는 “내 목소리를 듣기”였다

그래서 두 시간 동안 내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난 그걸로 충분했다

끝나고 설문지 드리는 것도 까먹고

리모콘 가져가는 것도 잊고 오늘 덜랭이였지만

그래도 그래도 충분했다

함께 하셨던, 그 귀한 발걸음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준비했다.

나 역시 아직까지 꿈을 꾸지만, 그래도 그분들께 꿈을 꿀 수 있는 열정을 지펴드리기 위한

어쩌면 주제넘을지도 모를 그런 컨텐츠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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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교육, ToutEdu를 운영하면서 (www.toutedu.com)

재능기부 형식으로 무료로 나눔강의를 하고 있다.

12월은 연말이라 남들에게 다 주는 선물, 나에게도 주자는 의미에서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의 이야기를 담아 쓰는 진짜 나의 ‘이미지’들의 향연, happy new me였다

내 안의 나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
그거, 들려주세요

당신의 마음 속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몰랐던, 모른척 했던, 잠시 접어두던 당신의 꿈을 찾으세요
만남을 통해 당신을 위한 스스로의 메세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시(詩)가 되어 당신을 위한 메세지로
오랫동안 기억되게 해 줄 것입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들’, ‘해야만 하는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고민, 갈등, 선택을 진짜 주인인 ‘내 안의 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찾아가는
‘나에게로의’ 속닥속닥

“내 안의 S.E.L.F.를 찾아라”

프로그램 구성

SELF EGO 찾는 법
SELF Embition 찾는 법
SELF MODEL 만드는 법
나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나를 찾는 방법을 알아봅니다

시인이자 우리 모두의 교육을 위한 작은 변화를 실천하는 교육나눔연구소
[모두의 교육, Think! ToutEdu] 박소진 대표가 전하는
당신을 위한 메세지, Happy New ME, Happy New Year